동포들에게 어떤 형태로 고통을 주는지 그 실상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조국을 떠난 동포들은 본국의 문인들이 쓸 수 없는 문학사의 여백을 채웠고, 외국 체험 없이 쓸 수 없는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풍부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일본어로 창작하는 재일동포작가들을 어떻게
재일교포2,3세들은 생활방식이나 의식적으로 거의 일본인이나 다름없는데도 일본사회로부터 소외되며 차별을 견디지 못해 일본으로 귀화하더라도 완전한 일본인이 될 수 없음.
2. 재일문학
한국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포문학, 재일동포문학이라 하여 일본문학과 구분하고 있음.
일본에서는 재일
2. 미국
1902년 12월 인천항을 떠난 101명의 한인들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지 이제 100년이 지났다. 그 후 재미한인사회는 미국과 한국의 변화하는 정치경제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가진 한인들이 이주하여 성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 중국(230만
문학상 수상을 거머쥐고, 이듬해 한일 합작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바로 「GO」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총련 출신 재일한국인으로 설정되어 있어 이 작품을 통해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삶과 상황, 일본인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면서, 일본
재일조선문화인협회’에서 발간된 종합지 조선평론에 참가, 1953년 2월 젊은 시인들을 주축으로 만든 시 동인지 ‘진달래’ 창간을 주도하는 등의 활약이 말해주듯, 김시종은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오사카 재일조선인 사회의 움직임 한가운데 있었다. 시집 ‘지평선’의 서문에서 오노 토자부로는 “
재일 조선인에 대한 민족탄압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1923년 9월에 있었던 간토[關東]대지진 때에 이성을 상실한 일본인에 의해 6,000여 명의 한국인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을 들 수 있다. 8 ·15광복 당시 200만 명에 달했던 재일 조선인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150여만 명이 본국으로 귀환하고 나머지 60여만 명
문학•영화•연극•음악 네 분야에서 60만의 자이니치가 전체의 30% 몫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가 작품활동을 한 재일조선인 작가 김사량을 시작으로 현재도 활동 중인 유미리, 가네시로 카즈키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학,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이상
재일조선인’ 이라는 용어는 한반도에 뿌리를 둔 존재로서,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의 결과 구 종주국인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민족 집단을 총칭한다. 어떤 재일단체에 소속해 있든, 외국인으로 어떻게 등록되어 있든 그것은 무관하다. 이에 비해 ‘재일한국인’이라는 말은,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재일 한국인 작가까지에게서 보이는 사소설적 경향은 이들을 논리적으로 일본 순문학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해 준다.
90년대 중반까지 재일 한국인 문학은 어디까지나 일본문학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4, 5년 전부터 민족의식과 분단 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하는 기
제1세대 문학의 특징
과제
일제의 암울했던 기억에서 해방
시대를 직시, 과거의 인식과 현실로부터 자유
표현
해방 직후라는 시대적 정황+개개인의 심경
방식
치열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됨
결과
재일 한국인의 투쟁사를 내밀하게 담아냄
제1세대 대표적 작가
김사량 1914~1950
「빛 속으로」를